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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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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Day 2 부엔 까미노! 알람이 울리기 전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번에서 출발한답시고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뭐 한다고 이렇게 일찍부터 출발하나 싶어 여유 있게 준비를 했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짱짱한 쫄바지와 제일 편한 나시티로 갈아입고, 재킷을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침낭을 정리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언제 어디서 배드 버그의 습격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침대에 침낭을 깔기 전 스프레이를 충분히 뿌리고, 내 침낭 안에서만 수면을 취하는 게 좋다. 까미노를 먼저 다녀온 아는 오빠의 꿀팁이었다. 아무튼, 침낭을 정리하고, 가방도 단디 정리한 후 발가락 사이사이에 바셀린을 듬뿍 발랐다. 발가락 양말을 신고, 등산 양말을 신으면 준비 끝. 다 처음 해보는 과정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아래층으로 내..
나의 산티아고 Day 1 시작의 시작 결심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심 따위를 할 여유가 한치라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퇴사를 하고 정신과를 가던지, 어디 산기슭에 숨어 폭포나 좀 맞아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이다. 되도록이면 방배역에서 가장 먼 곳으로,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을 가고 시펐다. 가능하면 한국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매일 계속되는 과한 업무의 반복과 끝도 없는 책임감을 탈출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방배 사거리 스타벅스에서 바닐라 라떼를 사가지고 복귀하는 길에 문득 차도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 그 날 결심 비슷한 걸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 마침 싱가포르로의 이직이 성사되었던 참이었다. 싱가포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