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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나의 산티아고 Day 2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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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의 Col de Lepoeder라는 산. 까미노를 걷다 보면 윈도우 배경화면 뺨치는 절경을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번에서 출발한답시고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뭐 한다고 이렇게 일찍부터 출발하나 싶어 여유 있게 준비를 했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짱짱한 쫄바지와 제일 편한 나시티로 갈아입고, 재킷을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침낭을 정리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언제 어디서 배드 버그의 습격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침대에 침낭을 깔기 전 스프레이를 충분히 뿌리고, 내 침낭 안에서만 수면을 취하는 게 좋다. 까미노를 먼저 다녀온 아는 오빠의 꿀팁이었다. 아무튼, 침낭을 정리하고, 가방도 단디 정리한 후 발가락 사이사이에 바셀린을 듬뿍 발랐다. 발가락 양말을 신고, 등산 양말을 신으면 준비 끝. 다 처음 해보는 과정이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새로 산 등산화를 단디 쫌매어 신었다. 침낭을 포함한 모든 준비물 중에 새로 산 두 개의 준비물 중 하나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구로에 있는 마리오 아웃렛에서 산 신발인데 그 어느 비싼 신발보다 가볍고 내 발을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 단박에 골랐더란다. 끈을 묶는 방법이 고전적이었던 게 약간 망설임 포인트가 되긴 했지만 그것 이외에는 모든 점이 만족스러웠던 신발이다. 

아무튼, 등산화를 단디 쫌매어 신었다. 신발을 단단히 묶는 게 어색해서 한참이나 걸렸다. 어제 같이 수다를 떤 호스피 딸로는 나를 쳐다보며 배낭을 세심히 챙겨준다. 배낭이 약간 기울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가방 양 옆에 삐져나온 조절끈을 보니 한쪽이 살짝 긴 것이 보여 조절을 하고, 중력이 가방의 평형을 조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쿵쿵 뛰고 호스피딸로를 쳐다보니 웃으며 Oui라 한다. 따라 웃으며 살짝은 긴장된 마음에 심호흡을 하니, 다시 웃으며 "Buen Camino!"

순례자들에게는 익숙하디 익숙한 이 말은 한국어로 해석하면 '좋은 길'이라는 의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에서 마지막 100km 구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몇 십 번은 족히 듣는 말.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때 처음 들은 말. 때때로 Hello가 되기도 하고 Take care이 되기도 하는 말. 애정, 동질감, 유대감, 사랑, 감사, 그리고 각자의 아픔과 쓰라림이 묻어있는 말. 

Buen Camino!라고 웃으며 화답한 뒤 가볍게 포옹을 하고 길을 나섰다. 약간은 어둑한 길. 여행지에서 하루만에 이동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는데ㅡ특히 이렇게 귀여운 마을은 여행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ㅡ 반나절 만에 떠나자니 괜스레 느낌이 이상해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뻔질나게 보아왔던 돌로 된 바닥도 새삼 예쁘고 물소리, 새소리도 듣기 좋았다. 천국이 있다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터벅터벅 걷는 내 발자국 소리도 듣기가 좋았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약간은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꽤나 귀여웠다. 새로 산 신발이 '어이, 수고해'하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의미가 될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물이 흐르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가 듣기 좋았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의미 같은걸 생각하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온 것이다. 힘들었다거나, 우울했다거나, 어떤 매체에 영향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냥 걷고 싶어서 왔을 뿐이다. 퇴사를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는 했다. 이제는 자의적으로, 내가 내 발걸음을 옮긴다는 의무감 혹은 다짐 따위의 감정으로 약간은 고무되어 있었다. 유럽에 온 지 2주가 다 되어어가는데도 새삼스레 다시 방배역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도 들었다. 2호선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된다는 미묘한 우월감이 드는 것 같았다. 지옥철에 끼인 채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향해 '메롱! 너희들은 삼성역으로 가니? 나는 론세스바야스로 가는데' 하는 되먹지도 않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산의 찬 기운, 습기를 머금은 나무의 냄새, 낙엽과 흝이 어우러지는 냄새, 그리고 말 똥 냄새.

 

목적지인 Roncesvalles로 가는 처음 27km의 구간. 처음 구간이라 힘이 들기도 하거니와 1400m에 달하는 산을 넘어야 하는 난코스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 열흘 간 잘 먹고, 잘 쉰데다 오기 전 산행은 못하더라도 근육은 연습을 조금 시켜놓고자 데드리프트, 플랭크, 스쿼트 따위를 조금 하고 갔기 때문에 굉장히 수월했ㅡ다고 느꼈ㅡ다. 

행복했다. 내가 이 곳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웠고, SJDPD에 도착을 했다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니 반응 또한 뜨거웠다(끝도없이 나를 괴롭히는 망할 인정욕). 사람들과의 인사도 정겨웠다.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Good morning' 대신 'Buen Camino'라 인사하는 것이 따뜻했다. 오랜만에 겪어 보는 낯선 사람들의 온기였다. 직장과 집 그리고 친한 친구들만 만나가며 촘촘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모르는 사람에게 웃거나 인사를 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던 ㅡ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웃으며 인사했다가 크게 무시를 당한 기억이 있다ㅡ 한국에서의 나 자신이 스르륵 녹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혼자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나 간다. 엿 먹어라' 하며 떠나온, 내가 자의적으로 정한 목적지였다. 나의 까미노. 흥이 났다. 다람쥐처럼 통통 걷고 있으니 잠시 마주쳤던 캐나다 할아버지가 'Such a squirrel'이라며 껄껄 웃으신다. 그게 또 재밌어 서로 격려하며 수다를 떨다 'Beun Camino!'라 하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1km를 걷는 게 몇 분이나 걸리는지도 몰랐다. 여행을 하면서 5km정도 걷는 것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지만 쉬어가며, 먹어가며 걷는 평지에서의 5km와는 차원이 달랐다. 꽤 힘이 들었다. 27km를 과열 걸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산장이 하나 보였다. 어느새 다 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나는 아직 어리고, 젊고, 근육을 단련시켜 놓은 덕분이다. 배도 고프지 않은걸 보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 어제 싸놓은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응?

산장에 다다라 표지판을 보니 Alberge Orrison이라 적혀 있었다. 그 유명한 산장. Orrison까지 가는 약 7km의 구간은 꽤나 가파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Orrison에 있는 작은 산장에서 하루를 머물다 간다고 했다. 저렴하고, 정겹고, 호스피딸로가 해주는 파스타가 맛있다고.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은  꼭 하룻밤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잠시 쉬어갈까 했지만 Col de Lepoeder라는 1429m에 달하는 산을 올라야만 했다. 앞으로 20km를 더 걸어야만 했다. 1/3도 오지 않은 지점에서 쉴 수는 없었다.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았기도 하거니와 아직 체력이 낭낭하게 남아있기도 했다. 더 갈 수 있었다.

산 중턱에 있던 표지판. 순례자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을 따라, 노란 표지판을 따라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올랐다. 절경이 아름다웠고, 바람이 상쾌했고, 냄새가 정겨웠고, 발자국 소리가 따뜻했다. 산 중턱에는 황금마차도 있었다. 오렌지 쥬스를 하나 사들고 나무에 걸터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아침에 걸친 재킷을 가방에 다시 넣었다. 날이 꽤나 따뜻했다. 볕이 강하지는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걷고, 또 걸었다. 종종 왼편에 소나 말이 보이기도 했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목에 달린 종이 울리기도 했는데 넓디넓은 산에서 바람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소리가 어찌나 편안하던지.. 분명히 몸이 피곤했을 텐데 지금 기억나는 건 당시 느꼈던 행복, 충만함, 여유, 벅차오름, 감사함 따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낭을 메는 것이 무리일 때는 동키 서비스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다. 말을 이용해 다음 마을로 배낭을 미리 보내는 것이다.

 

정상에 올랐다. 오는 길은 힘이 들었지만 한껏 고무된 감정이 고통을 한껏 중화시켜주었기에 크게 힘들다는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그저 바람이 시원하다, 풍경이 아름답다 혹은 똥냄새가 지독하다 정도만 느낀다. 오르는 길에서 본 황금마차에서 산 오렌지 쥬스와 쿠키 하나를 꺼내 들고 앉아 먹으며 바람을 느꼈다. 동행이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남자 친구 생각이 아닌 나중에 함께 할 동반자 혹은 배우자가 궁금해졌다. 나중에 꼭 함께 오면 좋겠다고,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조용히 부탁도 해 봤다.

내리막길만 남았다. 고도 1400m까지는 23km의 오르막길을 거쳐 올랐는데 고도 500m만큼 낮아지는데에 걸리는 거리는 4km밖에 나지 않는다. 오르는데 익숙한 근육만 잔뜩 연습하고 키워놓은지라 내려가는 데에는 상당히 어색한 근육들이 쓰였다. 아팠다. 축축한 바닥으로 인해 미끄러질까 두렵기까지 했다. 스키는 지그재그로 그렇게 잘 타 놓고, 정작 산행에서는 직진으로 내려가는 방법밖에 모르던 나란 사람... 골반이고 종아리고 온갖 근육들이 찢어지게 아팠다. 방법을 몰랐던 탓이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미끄러질까 두려워, 다칠까 두려워 천천히 내려간 탓이다. 부상은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쪽은 완만한 길, 한쪽은 조금 더 가파른 길이 있었는데 괜히 빠르게 가고 싶다고 가파른 길을 선택한 것이 후회되었다. 갈림길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후회를 한 건 아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힘들지라도 잘 내려가기만 하면 될 터였다. 두렵고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잘 견뎌내면 될 일이었다.

시간이 꽤 걸려 내려와서 12세기에 세워진 순례자를 위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순례길에 전반에 거쳐 곳곳에 알베르게 라고 하는 숙소가 있는데 말하자면 순례자를 위한 숙소들로 사립과 공립ㅡ무니시팔ㅡ로 나뉘어 있다. 보통 공립은 5에서 10유로 사이로 굉장히 저렴하지만 위치에 따라 시설이 좋지 않은 곳도 있는 반면 사립은 10-15유로 정도로 유럽 대도시의 도미토리보다 저렴하지만 상당히 쾌적하고 좋은 시설이 갖춰진 것을 볼 수 있다.

론세스바야스에서 간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였다. 선착순으로 좋은 침대ㅡ새로 구비된 침대ㅡ를 배정받는데 운이 좋게도 제일 최근에 리모델링된 숙소에 배정을 받았다. 제일 좋은 곳이라고 해봤자 개인실이나 2인실은 아니다. 대략 80-100개 정도 되는 싱글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그 침대가 상당히 깨끗하고 포근한 것 정도? 나는 중간 즈음에 배정을 받았는데 왼쪽에는 너무나 어여쁜 스위스 여자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스페인 40대 아저씨가 있었다. 그 외에 앞, 옆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 모두가 규율을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ㅡ여타 유러피언들과는 다르게ㅡ이라, 아니 그런 사람들이 하필 그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있던지라 고요했고 차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론세스바야스에 첫 짐을 풀었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으리라.

손빨래를 했다. 옷을 한두 벌 밖에 가지고오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빨고 말려야 내일 다시 입던지 배낭에 다시 넣을 수 있다. 힘을 주어 잘 짜내고, 양지바른 곳에 널어두고, 침대로 돌아와 스트레칭을 했다. 한 달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아프고 싶지 않았다. 건강한 상태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틈만 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오늘 쓴 돈을 가계부에 기입하고, 간단히 일기를 썼다. 돌이켜보니 '너무 고되다', '내리막길에서 무서웠다'가 대부분인 일기장인데 2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저 좋았던, 행복했던, 감사했던 순간의 온도와 냄새만 떠오른다.

나의 산티아고, 이튿날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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